2015년 12월 22일 화요일

워터파크에서 여자 ㅂㅈ본 썰

여름에 워터파크 캐xxx x이 가서 진짜 이쁜애꼭지랑 ㅂㅈ을 본이야기을 해볼께~

올해 무더운 여름 여자친구랑 캐X 을 가려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했지!!

참고로 나는 지방사람이야!!

지방에서 열심히 고속도로 타고 캐X 에 도착해서 담배한대 시원하게 빨고, 20분정도??

줄서다가 들어갔어!!

친구들이 줄 두어세시간 서야된다고 했었는데, 개장하기전에 도착해서 그런지 그냥 들어갔어

옷갈아입고, 그머냐..여자친구랑 높은대서 몸으로 슬라이딩 타는 1번/2번 골라서 타는 뭐그런거있었어~

그게 아주 긴줄이고, 이렇게 올라가면서 아래위로 참 볼것이 많아!!

가 본 사람은 알지!!

그런데 내 뒤에 있는 여자 패밀리중 한명이 키가 170정도에 몸매는 참좋고 얼굴 참 이쁜데 문제는 가슴이 상당히 작아!!

누가봐도 저건다 뽕인거야!!

알지??

그런 가슴을 가진여자가 비키니입고 내 한계단 밑에 있다고해봐!!

눈 만 살짝돌려도 젖꼭지가 다보여!!

시커멓더라고!!

얼굴이쁜값을 한다고 남자들이 얼마나 빨아댔으면 시커멓고 꼭지도 참커!!

여자친구만 없었다면 사진이라도 남겼을텐데~흐흐흐

그 검은 꼭지와 얼굴을 아주 긴시간 ~줄이길어서 대충 1시간 넘게 생판모르는 20대초 / 키 170/ 얼굴이쁜 여자 가슴과 젖꼭지을 봤어!!

그리고 아쉽게도 시간은 흘러서 맨꼭대기에 도착해서 슬라이딩을 타고 내려왔어!!

그다음 타자 내가 한시간 넘게 꼭지을 본여자였던거야!!

(여친은 2번타고 , 나는 1번을 탓거덩)

나는 귀물빼고 정신없고, 여친 가디건 둘러주고 머리 물털고있는데, 그여자가 소리을 지르면서 도착한거야!!

그리고 선 으악~으아~ 소리지르면 무섭다면서 내앞으로 걸어오는데,

비키니가 한쪽으로 밀려버린거야!!

일단, ㅂㅈ털이 적나라하게 보이는데, 여자친구는 머리터느냐고 정신없고, 

나는 그여자가 내앞에 올때까지 그냥 멍떄리며 구경했어!!

그런데 사물함이 밑에있었나봐!!

비키니 팬티가 한쪽으로 제껴진 상황에서 바로 내앞에서 쪼그려 앉는거야!!

나는 그순간 단 1초에 망설임도 없이 나도 쪼그려앉았어!!


그리고, 그여자의 포동포동한 ㅂㅈ 살을 봤어!!

아주 ㅂㅈ살이 매주 잘보이더라고!!

너무 이쁘데 ㅂㅈ에는 털이 없어서 클리스토리까지는 않보여도!!

근데, 여기서 그여자가 수건이랑 가디건을 빼고, 일어나려는 순간!!

친구들이 도착해서 내앞에서 ㅂㅈ을 보여주고있는 여자을 위에서 찍어누르며 무섭다고 안아버는거야!!

털썩!! 그여자는 그순간 다리을 벌려 버티려고 몸을 틀면서 다리는 쫘악 벌리고~주저앉는거야!!

이순간은 길어야 2~3초였어!!

그순간 그여자 ㅂㅈ는 순간 쫘악 하고 벌어지면서 핑크빛 ㅂㅈ의 속살이 보이고, 클리스토리까지 찰나에 순간 보이는거야!!

그이후 그여자 친구들이 낑겨서 장난치면서 알았는지 태연하게 아무렇지않게 정리하고 가드라고!!

나는 화장실가서 딸쳤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이이쁜 여자 1시간 30분동안 젖꼭지, ㅂㅈ털, ㅂㅈ살, ㅂㅈ 속살 까지 다봤는데 어찌 딸을 안칠수가 있겠어!!

하하하~~그 딸친순간은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하하하~

이제 그여자의 얼굴과 꼭지와 ㅂㅈ의 생김새는 점점 희미해지만, 그때의 느낌은 정말 좋았어!!


미성년자 모르고 먹은 썰

난 잘나가는 노래방웨이터였다

원래웨이터들은 보도랑 놀아나면 바로처맞거나 짤리지만 난 사고난 방에도 시간비를 칼같이 계산해서 올려주고 손님보다 아가씨를 먼저생각하는 웨이터로 소문나서 평판이 좋아졌고 서로 우리가게에 보도 넣을려고 하다보니 보도실장들과도 많이친해지고 아가씨들도 나좋아하고 밖에서 아가씨들이랑 술먹어도 실장들이 눈감아줬다. 그만큼 실장들이 나를 믿어줬고 그만큼 나도 그들의 돈벌이에 도움을 많이 줬기에 가능한일이다

암튼 아가씨를 우리한테 밀어넣어주다보니 자연스럽게 손님은 많아지고 수입도 늘어나드라. 그리고 내 그때 컨셉이 공부열심히하는 대학생에 학비없어서 일하는 컨셉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그래서 내려오는 애들 술취하면 업어서 차에 데려다주고 안타맞을 상황이면 구해주고 하다보니 나를 좋아하는 애들도 생겼다. 그당시 운동해서 몸도많이좋았고 날씬할때라 나진짜 중급정도는 됬었던거 같다 
다른웨이터 와다르게 그렇게 챙겨주다보니 애들 술취하면 내엉덩이 만지고 가고 가슴만지고 가고 볼에 뽀뽀하고 도망가고 그당시 나 완전 순수할때라 그런장난지면 얼굴완전 빨개지고 부끄러웠다. 
그런게 재미있었는지 소문퍼지면 너도나도 아가씨들이 내한테스킨쉽할려고 하드라. 제일황당했던게 어떤보도가 내엉덩이를 주물탕 주물탕하길래 얼굴빨개져서 왜그래 하지마 하니까 지가슴 만지라고 들이밀더라 그때 만졌어야되는데 완전 귀까지 빨개져서 도망갔다. 너거들은 왜안만지냐고 당연히 만지고 해야지 했겠지만 그것을 거부한건 신의한수였다

내가 가슴만지길 거부하면서 그게 입소문이탄거다. 매일 자기 가슴한번 만져볼거라고 혈안이 되어있는 남자들 상대하다가 대학생 그것도 공부도 잘하고 몸도좋은 순둥이를 만났으니 얼마나 표적이됬겠는가?
그걸로 너도나도 내려와서 지가슴 만져보라고 하면 난얼굴빨개져서 도망가고 애들은 키득키득 웃고 
지금생각하면 참재미있었던것 같다 
물론 그애들 다 옷위로 말고 맨살로 다만져줬다. 암튼 그러다가 눈에 밟히는 뉴페이스가 들어왔다.
까무잡잡한 피부지만 몸매가 비너스급이고 처음 출근했으니 당연히 우리가게 먼저넣었단다. 그래서 신경써달라는 보도실장 말에 바로 알겠다고 방넣어줬다. 그당시 손님들은 내말을 거의 믿었기에 내가 앉히라면 거의다앉혀주는 손님이많았다. 그래서 그애를 가장매너좋은방에서 매너 좋은 손님한테 앉혀줬다.

이 뉴페이스 이름을 그냥 편하게 현아라고 할께. 현아가 첫방에서 편안하게 일하고 그다음날도 그그다음날도 내려와서 편하게 일시켜줬다. 출근 첫날부터 힘들면 안나오는 애들이 많기에 보통뉴페이스들오면 우리가게 넣어준다.
실장들이 어느 가게 사장 웨이터들보다 날믿었기에. 일주일 정도 우리가게에만 줄기차게 내려오다보니 현아도 사람인지라 게다가 초이스도 잘되니 간혹 만취인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업고 데려다주고 한번은 실장이 일이있어서 집에좀데려다 주라부탁하드라. 그래서 만취된걔업고 집에 눕히고 그대로 나왔다. 그다음날은 쉬고 2일뒤에 출근했는데 어제 너무고맙다면서 햄버거 사왔드라.

그래서 고마우면 담에 밥이나제대로 사라 했더니 현아가 연락처 묻드라. 그래서 알려 주고 3일뒤쯤 일이 터졌다. 현아방에서 술을 버리다가 손님한테 걸린거다 그방에서 잔깨지는 소리들리길래 들어가보니 
손님이 술좀올랐는데 술버린거 들켜서 기분 다잡쳤다고 애들한테 욕하고 난리난거다.
너거들도 알겠지만 같이 술먹는데 파트너가 술먹다 버리는거 걸리면 그것만큼 좋은핑계거리가 없다. 그리고 아가씨들은 한대맞아도 할말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내가 바로 들어가서 상황정리해줬다.
3명이었는데 항상가게에 내가혼자보다보니 술킵술 3병더넣어주고 내가화끈한 미시들로 한시간 서비스 시켜준다고하고 계산받고 마무리 해줬다. 
그렇게 해주고 옆방가보니 애들 울고있더라. 그리구 내가실장한테 전화해서 애들데리고올라가라고 하고 애들은 연신 미안하다면서 울더라. 우리가게 술더팔아 줄려고했던거라는데 내가 쿨하게 괜찮다고 너희들 안다쳤으면 됬다고 윙크한번하고 옆방손님 들으라고 욕하면서 올려보냈다 당연히 시간비까지 올려줬다. 그리고 내가마칠때쯤 현아한테 문자오드라 오빠언제마치냐고 오늘 밥먹자고 연락이 와서 얼른마무리하고 약속장소로가니까 현아가 이쁜얼굴로 앉아있더라.

밥먹고 소주한잔하면서 이이야기저이야기했는데 청순가련은 아니고 학교에서 소위좀 놀았고 육상하다가 그만두고 학비벌려고 이일한단다. 나이는 스무살이라 이야기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내가먼저 멘트날렸다. 집에가면 또외롭게 혼자 자야된다고하니 나괜찮으면 자기집에서 자고 가도된단다.
나도 술좀먹었고 거부할이유가 없어 현아집으로 ㄱㄱㅆ 했다. 들어가니 여자냄새에 향기좋드라. 이사온지얼마안되서 옷장 티비 침대 끝이더라. 현아 먼저샤워하고 오고 흰티에 핑크색 츄리닝 핫팬츠입고 젖은머리로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꼴리드라. 그리곤 현아도 취했는지 침대에 누워서 팔벌리고 안고 재워준다고 얼른씻고 오라드라 재빨리 씻고 나왔는데 뭥미? 이아이 자고있는거 아니겠니? 
나도 팬티만입구나와서 현아옆에 누웠다. 어찌나 떨리는지 그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너무이뻐서 입에 뽀뽀하니까 내쪽으로 돌아눕드라. 그래서 떨리는 가슴을 가지고 가슴에 손을 살짝올렸다 비컵은되겠드라. 근데 나도 남자 아니겠냐 옷위로만지니까 맨살만지고싶드라 옷속으로 몰래 손넣었는데 브라까지 차고있드라. 그래서 브라위로 만졌는데 이 아기가 나를 꼭 끌어안드라. 
내눈앞에 가슴이딱 붙어있는 그런포즈 알지? 거부반응도 없고 해서 브라속에 손넣었는데 그거아냐? 탱탱함을 넘어선 탱글탱글함을 내가 가슴매니아거든 진심 가슴이쁜여자 완전좋아한다. 뽕넣어서 만든 인조가슴말고 자연산인데처지지않고 ㄲㅈ는 작은가슴 핑크빛이었으면 더이상 끝이지 브라속에 손넣어서 만지고 있는데 또 욕심이 끝이없지 입으로도 느끼고 싶더라.
그래서 티 올리고 브라 끙끙대면서 벗길려고 하니까 잠에서 깬 현아가 날바라보고있드라. 그래서 이거 벗구자면 안되냐고 하니까 귀엽게 웃으면서 자기가 브라벗드라 노브라 흰티셔츠 완전 작살난다

브라벗어주니 보고싶더라 현아가슴 옷을 위로올리니까 진짜이쁘더라. ㄲㅈ도 작고 근데 핑크빛은 아니야 입으로 물고 혀로 비벼주니까 느낌좋다고 더해달라드라 . 이건 허락의 의미잖아 그래서 입으로는 ㄱㅅ 물고 키스할려고 했는데 ㄱㅅ이 좋다고 더해달라는거야. 그래서 키스포기하고 바지로 손이내려갔는데 손잡더라 미안하다고 나생리라 오늘은 좀그렇다고 그래도 나랑하는 첫잠자리 찝찝하게 하고싶지않다나 아쉬움을 무릎쓰고 ㄱㅅ만 열심히 ㅇㅁ 했다. 최선을다해서 한십분은 ㅇㅁ 한거 같다 
현아가 신음소리 가 점점커지더니 내머리 잡고 갑자기 키스를하는거야. 얼마나 잘하는지 나보다 한수위도아니고 세수위의 스킬은가지고있는걸 나도 키스하면서 그렇게 좋은적은 첨이었다. 그렇게 키스하다가 현아가말하드라 못참겠다고 자기도 하고싶다고 바로 올탈의하고 현아도 올탈 시키고 바로들어갔다 
근데 더대박 좁은ㄱㅁ인데 그것을 더쪼아준다는 느낌? ㅇㅁ할때 ㅍㅂㄱ 였는데 키스에 이제 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쪼아주니까 5분도 못하고 배위에 내동생을 꺼냈는데 현아손으로 내꺼흔들어주드라. 나 첨으로 그때 오르가즘느꼈다 
ㅅㅈ이 끝이 아니라 그흔들어줄때 ㅈㅇ이 나오면서 무언가 더나올꺼 같은 느낌. 한번 끝나고 씻고 바로 또하고 씻고 또했다. 3번하니까 다리가후들거리고 그때가 우리가 사귄날이었다. 한달은 거의 현아집에서 살았던거 같다. 한달정도 사귀고 친구들이람술자리 같이 갔다가 둘다 만취되서 또 현아집 갔는데 우연히 지갑에서 신분증떨어져서 봤더니 열여덟살이더라. 만취된상태에 그거보고 더흥분되서 자고있는현아랑 바로 그상태에서 했다.
샤워도 안했는데 별로 안더럽게 느껴져서 ㅂㅃ까지다하그 ㅍㅍㅅㅅ하고 잠들어서 그다음날 물어봤다 왜속였냐고. 그니까 현아가 왜 허락없이 그런거 보냐고헤어지자드라.
그래서 현아집에서 나와서 집가서 다음날출근하니까 현아는 보도 그만두고 딴데로가고 3일뒤에 폰번호바꿨드라. 참 아쉬웠다 그게 마지막인거 알았으면 한번 더할껄. 암튼 세월도 꽤지났고 현아도 다른 남친 생겼겠지. 

남자답게 그남친에게 한마디한다 
부럽다 이노무시키야~!!!!!!
끝.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텐트에서 친척동생과 한 썰

우리 가문중에 친척 동생과 나만 아는 썰을 여기에 풀어볼까 한다.

우리집은 2형제야 내가 첫째지.

아버지 일때문에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어.

설날 추석만 되면 항상 5시간 차타고 할머니댁으로 갔지.

그때마다 우리 본다고 이모 할머니가 왔는데 이모 할머니네 딸한테 2딸이 있었어

그때 내가 13살이었으니깐 여자애 1명이 12살, 내 남동생 11살, 다른 여자애는 9살이었어

우리는 놀 새끼들도 없으니깐 어렸을때부터 친하게 지냈지.

때는 내가 중1이었을 때, 간만에 친척들과 바닷가로 1박 2일 여행을 가기로 했어.

어른들이 짐싸는 동안 우리는 작은방에 있는 침대 위에서 TV보며 놀고있었지.

그런데 리모콘이 침대 밑으로 떨어진거야 그것도 벽쪽으로

그때는 여름, 그년들은 편안한 핫팬츠를 입고있었지

리모콘 주으려고 12살 먹은 년이 대가리 침대 밑에 박고 무릎 꿇고 팔 뻣어서 잡으려고 하더라고

난 같이 보려고 침대에서 내려왔는데

시밤 방댕이 딱 뒤치기 자세 나오는거 아니겠냐

난 성 지식을 어릴때부터 접해서 이미 나는 왜사는지 알고 있었지.

난 그년 똥꼬에 똥침을 넣어줬어

그년이 ㅈㄹ하는것 같으면서도 싫은 티를 안내더라고

이때 알았지

아 이년 뭘쫌 아네

우리 둘은 동생들 TV에 빠져있을때 난 그년 보지 찌르고 그년은 내 좆을 움켜쥐며 서로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어

시발 그건 내게 고통이 아니지 사랑이다.

그때 벗길수도 있었는데 동생새끼들 때문에 참았다. 어린새끼들이 어머니들한테 잘 이르는거 잘 알지?

어른들 다 준비했다 해서 우린 부랴부랴 나왔다.

바닷가에서도 똥침 ㅂㅈ 긁고 싶었지만 어른들 눈치 보여서 하진 못했다.

다음날, 이젠 집으로 가야 하니깐 어른들이 텐트를 비우고 한 텐트에서 짐을 싸더라고

그때 텐트를 3갠가 4갠가 썼어.

공짜 오피스텔이 생긴게 아니겠냐!

난 그년 데리고 텐트 하나 빈거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년 동생년이 들어올려고 하는게 보이더라

나는 동생년보고 뭐좀 사오라고 돈 쥐어주며 빨리 보냈지 귀중한 시간 뺐겨야 되겠냐

방해꾼들이 모두 사라졌다. 서로 눈치보면서 나는 그년 바지를 벗겼지

그년은 쑥스러워 하면서도 쫌 겁에 질린것 같기도 해 보였다. 그년 첫경험이었거든  아다!

난 일단 야동에서 나온것 처럼 내 좆대가리를 그년 ㅂㅈ 앞에 비비면서 천천히 그년 물이 흐를 수 있도록 움직였다.

쫌 물이 나오는것 같더라

난 천천히 좆을 구멍에 삽입했지

그년이 막 아프다고 다리 때리더라

처음에는 매우 천천히 움직이면서 점점 속도 올려가니깐 부드럽게 피스톤질이 되더라

부드럽게 될때쯤 좆을 보니깐 빨갛게 되어 있는게 아니겟냐

이게 말로만 듣던 떡볶이 ㅅㅅ지

난 그 쾌감을 즐기며 전나 움직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텐트 문이 열리는겨

시발 좆됬다 하면서 존나 빠르게 좆을 빼고 입구를 봤는데

동생년이다 ㅡㅡ

내 좆대가리는 이미 어떤 새끼한테 걸려서 ㅈ될거란 상상에 묵렴하고 있었고

아다 뚫린 년은 바지 이미 빠르게 입은 상태더라

이미 죽은 좆대가리 살려서 해봤자 쿠퍼액에 나온 정액때문에 위험할수도 있고 

동생년도 보낼 아이디어도 없었기 때문에 떡볶이 ㅅㅅ는 거기서 막을 내렸다.

난 그때 추억을 회상하며 매년 명절날 그년한테 전화해서 ㅅㅅ하자고 꼬셨지

그런데 그년은 욕하면서 안한다고 하더라 근친이라면서

지금까지도 슬쩍 말해보고 그러는데 아직까지 욕한다.  나도 이젠 포기하고 슬슬 접고 있다.

아다를 뚫어서 좋지만 한가지 후회하는게 있다.

그때 동생년 보내고 다른 텐트로 옮겨 갔으면 계속 할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떡볶이는 맛있었다.

용서한 근친 썰

누구나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하기 어려운 그런 말못할 사연들이 있음.

울집이 그땐 좀살아 서초에 62평 삼.

직장땜 울산계신 큰외삼촌(울엄니 오빠가 넷이나 ^^)이 계셨는데, 딸이 X명여대 붙었다고 우리집에 살게 됨.

그 누나 (나랑 9살 차이) 천상 여자 스타일에 어린시절 나에게 잘해줬단 기억만 있음.

학교-집-도서실 챗바퀴 도는 범순이 스탈.

그누나 1학년 여름방학에 울산 안가고 학교에서 무슨 알바함.

8월초 식구들 해운대 놀러가는데 난 보이스카트 캠프땜에 같이 못감.

그날밤 누나가 날부름. 동네가게가서 더위XX 사준다고, 하나씩 사 물고 들어옴.

누나방에서 먹는데, 누나가 너 언제까지 엄마찌찌 먹었어? 물음.

난 아마 3살 그럼. 누나는 또 먹고싶어? 함. 그래서 응 했더니 일루와 함.

갑자기 누나가 티셔츠 올림.

어린 나이에도 순간 당황했으나 다가감.

먹어봐 하는 누나말에 눈치한번 보고 꼭지를 빨기 시작함.

한 5분 빨고 아파? 물어보니, 누나 아니 좋아 함.

잠시후 너 여자 밑에 봤어? 묻기에, 아니 그렀더니 볼래? 함.

그래서 응 했더니 기다려단듯 반바지를 내리는데 엄마꺼 본거랑 똑같음. 그리곤 만져봐 함.

어린나이에도 침을 넘기며 만지기 시작함.

안에 손가락 넣어 봐라, 냄새 받아 보겠냐, 비벼보란둥 당시 암것도 모르는 나지만 뭔가 찜찜함과 호기심이 동시상영.

그날은 그렇게 각자 잠.

그담날 하루종일 담날떠날 보이스카웃 캠핑으로 들떠 있는데 누나가 밤에 또 부름.

잼난 놀이하자며. 갔더니 징고게임 하자며(나무블럭서 하나씩 빼다 무너트린넘 벌칙받는) 지는사람 이기는사람 시키는데로하기.

게임은 성질급한 내가 일방적 패배. 벌칙은 누나 찌찌빨기, ㅂㅈ 손가락 넣기, 마지막에 혀로 누나 ㅂㅈ 맛보기. 

그 묘한 흥분과 찝찝함은 말로 표현불가.

그날이후 한달에 몇번씩 누나는 부모님 동생들 없을때 날 불렀고, 우린 그놀이를 계속함.

그누나 2학년말 큰외숙모 서울에 집사서 이사 나갈때까지.

이후 사춘기를 겪으며 난 그행동들이 뭐였는지 알게 되었고, 가끔씩 목구멍으로 밀려드는 서글픔을 느낌.

졸업후 그 누나는 결혼하고 아이도 3이나 낳고 잘삼. 친척모임서 만나면 영혼없는 짧은인사와 시선회피가 나의 습관이 됨.

한 2년전 퇴근하고 집에가니 울마눌이 기분 ㅈㄴ up.

물어보니 낮에 도곡동 형님이랑 점심먹고 ㅅㅅㄱ 루xx통샵 가서 핸드백 사주셨다고 흥분.

그걸 왜 받냐고 짜증내니 마눌이 그럼형님이 사주시는데 안받는게 예의냐고 ㅈㄹ떰. 뭐라 말할수 없었음.

그외도 애들입학할때 마눌한테 쓰라고 목돈도 주고 했음.

그 상황이 짜증 났지만, 뭐 설명해줄수도 없고 걍 답답함 그자체.

작년 12월초 둘째 외숙모께서 암으로 돌아가셔 아x병원 장례식장에 다 모임(내가 젤 따랐던 숙모 ㅠㅠ).

둘째날 저녁 복도 의자에 앉아있는데, 누나가 와서 앉아도 되냐함. 한 1분 서먹하게 앉아있는데, 누나 갑자기 닭x같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낌.

XX야 나 용서해줘. 정말 너한테 죽을죄를 졌어. 미안해.. 순간 나도 북받쳤지만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뭘 난 기억도 잘 안나..ㅎㅎ 그순간 난 누나를 용서하기로 했음.

그리고 옆으로가 어깨를 안아줌. 지난 25년간의 서로의 벽이 스르륵 허물어 지는순간이였음.

이후 의도적으로 매형이랑도 격없이 지내려 하고, 누나한테도 웃으며 장난도 침.

지난 구정 가족모임서 누나한테, 누나 우리징고게임 할까 했더니, 미쳤어 얘가 하며 무안한듯 눈을 흘기고 부엌으로 가는데 갑자기 ㄱㅊ가 ㅍㅂㄱ ㅋㅋㅋ

어린시절 사촌누나와의 소위 근친행동은 나에게 짜릿한 흥분 보단 생각하기 싫은 후회스런 씁쓸한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음.


2015년 12월 20일 일요일

이란성 쌍둥이 근친 썰

나는 나와 4분차이의 이란성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

우리 친 할머니 께서는 이란성 쌍둥이라는 사실을 아시자 

남여 쌍둥이는 커서 서로 붙어 먹는다며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를 지우라고 주장하셨고 

그 일로 인해 아버지와 의절하셨다 

우린 할머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근친상간을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은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그닥 평범하진 않았다 

우리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건달이였으며 우리 어머니는 밤무대 트로트 가수 셨다 

어렴풋하게 우리집에 일도 안하는 삼촌들이 살았던 시기가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들이 나이먹은 분들은 다들 알만한 꾀 큰 사건을 저지른 수배범이였다거나 

어머니와 우리가 탄 차가 열댓명의 괴한 들에게 납치 당할뻔 했으나 빨리 달려와준 경찰 덕에 목숨을 건진일이나 

꾀나 다이나믹한 유년기 였다 그래도 내 인생은 아직 까진 평온한 편이였다 

나와 내동생의 인생이 꼬이게 된 결정적 사건은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2학년 쯤 때 벌어졌다 

간단하게 말하면 어머니는 남자가 있었고 아버지는 여자가 있었다 

아버지의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 돈을 잔뜩 빼았아 이혼했다 

이혼 과정에서 나는 아들이므로 아버지와 살게 되었고 동생은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쌍둥이들이 대부분 그럴꺼라고 생각하는데 서로에 대한 애착이 다른 형제 들에 비해 좀 강한 편이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떨어져 살아서 인지 나도 내동생도 상당히 서로를 그리워해 

매일 밤 서로 전화를 하며 서로를 그리워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건 전화를 어머니가 받고는 같이 살지 않으니 더 이상 전화하지말라고 소리치고는 끊었다. 

나는 몇번인가 더 전화했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짜증섞인 욕설만 들려올 뿐이였다 

침울해 있는 나를 인자한 새엄마는 어머니도 보고싶고 동생과나를 만나게 하고 싶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 하는 시기 라는 식으로 나를 설득했고 그렇게 동생과 나는 멀어 졌다 

동생과 헤어져 산지 3년 어느새 새엄마나 새로 태어난 남동생과의 생활도 적응 되었고 

여동생이 내인생에서 서서히 잊혀질때 쯤 이였다 

내가 살면서 딱 기억나는 뉴스가 세가지인데 

하나는 라이브로 지켜본 9.11 테러 사건 뉴스였고 두번째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뉴스였고 

세번째는 이날본 씨랜드 화재 사건 의 뒷수습에 관한 뉴스였다

새어머니는 동네 학원의 미술교사 출신으로 (아버지와의 불륜이 발각되면서 짤렸지만)

교육에 꾀나 민간한 분이셨고 저녁시간엔 항상 뉴스를 틀어놓고는 하셨다 

아주 오래간만에 아버지도 함께한 저녁시간에 씨랜드 화제사건에 관해 뉴스앵커가 발표하고 

아버지가 거기에 호응하며 혀를끌끌 차던 그때에 우리집 초인종이 울렸고 

새어머니가 누군지 궁금해 하며 현관으로 향했고 나머지 세사람이 전부 다시 티비에 집중했을때 

현관에서 새어머니의 비명같은 소리가 들렸가 아버지와 나는 깜짝놀라 

현관으로 달려갔고 우리가 마주 한건 내 기억속에 잊혀져 있던 내 쌍둥이 여동생 이였다 

3년만에 만난 동생의 몰골은 끔찍했다 

온몸엔 멍자국이였고 머리털은 듬성듬성 빠져있었으며 친엄마의 집에서 맨발로 이곳까지 온듯

발은 온통 피 투성이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술에취해 울며 내동생을 부여잡고 울때 들은 이야기지만 어금니 세게가 빠져있었다고 했다 

내동생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모든 상황을 이해한 아버지는 골프채를 겨눠잡고 귀신같은 얼굴로 

뛰쳐 나가려고 했으나 새어머니는 일단 병원이 먼저라며 여동생을 들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어린나이였지만 대충의 상황을 파악한 나는 동생과 떨어져 즐겁게 지낸 지난 3년이 몸서리치게 
죄스럽게 느껴졌다 

친어머니와 친어머니의 남편은 아버지에게 뜯어낸 위자료로 큰 술집을 차렸고 

처음엔 꾀 잘나갔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며 상당히 궁지에 몰렸다고 했다 

사업이 잘 되지 않자 어머니와 그남자의 화살은 내 여동생에게 돌아왔고 꾀오랜기간 심각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여동생은 이때의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고 나도 절대 물어보지 않지만

술에 취해 조금 이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너무 배고파 

책을 뜯어 먹은적도 있다고 하는데 동생을 부여잡고 3시간은 운거 같다 

어쨌든 아버지는 친엄마의 가게에 들이닥쳐 닥치는 대로 부수고 

친 엄마 남자의 코뼈와 광대 그리고 갈비를 작살내고 내 여동생을 다시 데려왔다 

다시 돌아온 후 여동생은 한동안 내가 알던 여동생이 아니였다 

원래부터 숟기가 많이 없는 아이였는데 

그런일을 겪고 나니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죄책감에서 였을까 여동생에 대한 애착이였을까 

내 여름방학의 대부분의 시간을 여동생 의 마음을 여는대 썼다 

매일 매일 광대 짓을 하고 여동생을 웃기려고 별의 별 짓을 다했다 

3주 정도 지나자 여동생의 상태는 예전만 하진 못하지만 꾀 돌아왔고 

새엄마나 남동생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를 할 정도 까지 호전 되었다 

여름 방학이 끝남과 동시에 동생은 우리학교로 전학 했다 

동생은 여전히 새아빠가 자기를 잡으러 올꺼라며 두려워 했고 나는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주머니에 작은 면도칼을 가지고 다녔다

지금도 그때 면도칼을 이야기하며 서로 민망하게 웃곤 한다 

다행히 그 후 아무 사건도 잃어 나지 않고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우리둘은 

중학교에 진한하게 되었는데 평준화로 인해 여동생은 동네에 유일한 여중으로 진학하고 

나는 동네에서 꾀나 떨어져있는 공학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걱정은 좀 됬지만 동생의 상태가 2년간 꾀 호전된 상황이였으므로 우리가족은 안심했던거 같다 

중학교 시절 초반에 꾀나 평탄했다 동생도 그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었는지 

나에대한 의존증이 많이 없어졌고 나름의 취미도 생겨 애기 오타쿠로서 자신의 길을 찾은 듯했고 

나또한 2002년 월드컵 열기로 인해 밥쳐먹고 축구하기에 바빳으며 

아버지는 완전 어두운일에서 은퇴해 고깃집에서 소일거리 하며 새어머니와 바쁘게 살았고 

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고 생각하는 남동생은 혼자 두어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게 2년이 또 지나고 우린 3학년이 되었다.

여동생은 어려서 부터 숟기도 없고 낮도 많이 가리는 소심한 아이였다 

게다가 초등학교 시절 심각한 가정 폭력 후유증 으로 그런 성격은 더 심해졌는데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자 그 성격은 더 심해져 집에와서도 자기방에 쳐박혀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고 말 수도 적어지고 학교를 안가고 혼자 돌아다니다 걸린다던지 

이상한 일이 늘어갔다 새어머니나 아버지 나또한 그저 사춘기가 온거라고 생각하며 

별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때 눈치를 챗어야 했다 

중학 3학년이 되고 여동생의 그런 행동들이 계속되던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한 통화 걸려왔다. 

새어머니는 다급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동생이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나는 가방도 챙기지 않고 계산도 하지않은체 병원으로 달려갔다 

동생의 부상은 심각한 것은 아니였다 단지 동생이 스스로 자신의 동맥을 끊었다는 사실이 

내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동생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그 동안 친했던 아이들과 반이 갈리게 되었고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반에서 고립된 듯 했다 

원체 소심하고 어렸을적 사건의 보상심리 때문인지 여동생에게 뭐든 최고로 비싼 것 만을 해주던 

아버지 덕에 동생은 꾀나 튀는 존재 였던거 같다 

동생은 머지않아 질이 안좋은 아이들의 타겟이 되었고 처음엔 장난 같던 괴롭힘이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소심한 동생의 성격 덕분에 점점 업그레이드 되 

강도 높은 폭력에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금액의 갈취까지 자행 되었다 

소심한 동생은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새어머니 지갑에서 돈을 훔쳐 아이들에게 바쳤으며 

돈을 가져오지 못한 날은 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새어머니는 자신의 지갑에서 돈이 사라졌을때에 내가 한 짓인줄 알고 남자애들은 그럴때가 있다며 

웃어 넘겼다며 그때 눈치를 챘어야 한다고 술에취하면 눈물을 흘리신다 

솔직히 나도 몇번 훔치긴 했다

동생은 3개월간 자기 혼자만 속을 끓이다 다른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학교 화장실에서 손목을 그었고 

다행히 담배피는 학생들을 잡기위해 순찰을 돌던 학생부 선생님에게 발견되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행중 다행으로 소심하고 심약한 성격 덕에 동생의 상처는 깊지 않았고 간단한 봉합수술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생의 사건 후 동생은 우리학교로 전학했고 동생을 괴롭혔던 학생들중 주동자 둘은 강제전학 당했고 

콩밥을 먹이겠다던 아버지의 바램과 달리 우리나라의 청소년 법은 가해자에게 유리했다 

동생은 우리학교로 전학하게 된것은 동생의 요구였고 

전학 후 동생의 나에대한 의존증은 더욱 심해졌다 

학교에서 다른 누구랑도 어울리지 않았으며

내가 축구를 하면 골대옆에 앉아 기다렸고 내가 친구들과 피시방에가면 내옆에 앉아 책을 읽고는 했다 

남자의 그룹에 갑자기 여자애 그것도 누구하고도 말을 안하는 어두운 여자애가 끼어들면 귀찮을 법 한데도 

내 친구놈들은 아무런 불평이 없었고 오히려 내동생과 친해지려고 부던한 노력을 하곤 했다 

아직까지도 참 내 친구들이 고맙다 

나와 내친구들의 노력으로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엔 여동생도 가끔 내친구들에게 

웃음을 보이거나 한두만디 말을 건낼 정도로 많이 나아 진 듯 했다. 

내 동생은 나와 내친구들과 함께 낚시를 가거나 놀이동산을 다니며 방학을 보냈고 

내친구들의 배려로 피시방에서 하던 게임을 스타나 카오스에서 동생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카트라이더로 바꾸었다.

그렇게 우리의 중학교 생활이 끝났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자 우리는 또 고민에 빠졌다 

평준화로 인문계고는 뺑뺑이였고 동생과 나는 또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동생은 그 사실 만으로도 불안해 했다 

나는 동생을 위해 동생과 함께 갈 수 있는 실업계를 선택했고 

내 친구놈들 중 두놈이 나와 함께 했다 

그중 한놈은 실업계 에 갈 수 밖에 없는 성적 이였고 

한놈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생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우리학교는 여자상업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정보고 로 이름을 바꾸며 남자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그런 학교였다 

양아치들 밖에 없을거라는 걱정과 우려와 달리 우리 셋은 동생을 위해 남자들이 거의 없는 과에 지원했
고 

셋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고교 3년간 거의 왕자 대접을 받으며 학교에 다녔다 .

내 친구놈이 들어가자 마자 커플이 되는 바람에 친구여친의 그룹에 동생을 끼어 넣을 수 있었으며 

그 덕에 동생도 많이 밝아 졌고 나또한 편한 마음으로 충실한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동생은 나에대한 의존증이 있었지만 천천히 개선 여지가 보이며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죄책감도 많이 사라지던 때였던거 같다 

나는 동생의 선택 덕에 인생 최고의 인기절정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남녀 성비 2대8의 역대급 여초 현상 덕에 주관적으로 아무리 점수를 후하게 주어도 

중상 정도인 나는 수 없이 많은 대쉬를 받았고 1학기 가 지나자 

어떤 여자를 사귈지 골라야 할 처지 였다. 나는 나에게 대쉬하는 4명정도의 여자 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제일 가슴이 큰 1학년위의 누나와 사귀기 시작했다 

연상이여서 그런지 이누나는 스킨쉽이나 애정표현에 거침이 없었고 

사귄지 일주일 만에 전교생이 우리가 사귀는걸 알아야 한다는 듯 

어디서나 애정 표현을 해댔다 사귄지 2주만에 난 남자가 되었고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 누나는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다녔다 

동생에겐 신경도 쓰지못했다 

동생도 겉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듯 행동 했었다 

그리고 그 누나와 백일 기념으로 데이트를 하던 일요일 

다시한번 동생은 자신의 동맥을 끊었다 

또다시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 

나쁜짓도 하면 는다고 이번엔 정말 제대로 손목을 깊게 그어서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응급실 밖에서 아버지는 내 멱살을 잡으며 무슨일이냐고 다그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꼽만큼도 짚이는 곳이 없었다 

너무나도 답답한 맘에 전화를 받고 달려온 친구에게 담배를 빌려서 내인생에 

처음 담배를 피웠다 

다행히도 동생의 수술은 잘 끝났고 의사선생님은 새어머니의 대처가 정말 적절했다고 했다 

만약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위험한 상황이였다고 

새어머니는 동생의 첫번째 자살기도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철저히 준비해두고 계셨던거 갔다 

며칠후 동생이 일반병동으로 옮겨졌다 그때까지도 의사는 물론 아버지 새어머니 에게도 

자신이 왜 자살을 기도했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동생을 만나기위해 학교도 조퇴하고 동생의 병실을 찾았다 

병실에 들어서기전 쌍욕을 퍼붓고 다시는 그런짓 못하게 정신차리게 만들어야 겠다는 다짐과 달리

손목에 붕대를 감고 초췌한 안색의 동생을 보자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다 

어렸을 적부터 고질적으로 내제된 죄책감 때문 이였을까 

동생을 부여 잡고 눈물흘리며 내가 한 말은 "미안해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미안해" 였다

서로 부여잡고 10여분을 눈물을 흘리고 동생은 바람이 쐬고 싶다며 

옥상 정원으로 나를 끌고 갔다 

배운지 얼마 되지않은 담배를 태우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나는 왜그랬는지 동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담배 두개피를 더 태울동안 뜸을 들이던 동생은 서글픈 눈으로 어렴풋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동생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사랑한다는 말에 내 대답은 

가벼운 "나도" 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치가 없는 건지 순수한 건지 모르겠다 

동생은 내 대답을 듣더니 또다시 서럽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난 영문도 모른채 동생을 달랬다 또다시 몃분간 운 동생은 

훌쩍이며 그간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여자친구가 생기자 느껴진 상실감과 질투 에 대해 

자신의 마음이 그저 오빠의 대한 집착이 낳은 애같은 질투라고 스스로를 달래던 시간들 

결국엔 자신이 나를 남자로서 사랑한다고 인정하고 느낀 어마어마한 죄책감에 결국 

그런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이야기에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을 달래긴 커녕 

아무말 없이 동생을 병실에 대려다 주고 한참을 걸었다 

동생의 저런 집착과 감정이 유년기와 중학교 시절 겪은 사건에 기인 하며 

그책임은 온전히 그때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나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의 상태도 모르고 동생 앞에서 여자와 희희덕 된것을 생각하니 

죄책감에 머리가 터질듯했다 

그날 이후 우리 사이가 예전처럼 돌아가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난 동생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고 동생은 의도적으로 날 피했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남매에서 한순간 우린 서로에게 죄인이 되어 있었다 

한동안 방황했다 학교도 갈 수 없었고 집에도 들어가고 싶지않았다 

혼자 있거나 술에 취해 있지않으면 죄책감에 심장이 찢어 지는 듯 숨이 가빠지고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나중에 진단 받으니 공황장애 라더라 

그래서 밤새 함께 있어줄 친구들을 찾았고 함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있어줄 

친구들을 찾아 해맸다 

아이러니 하게도 내 방황을 멈추어 준것도 내 동생이였다 

어느날 집에 들어와 보니 내 침대 위에 편지가 놓여있었다 

편지엔 내 방황이 자신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동생의 심정과 

자신의 감정 때문이라면 평생 숨기고 살아보겠다는 동생의 다집이 적혀있었다 

나에게 그 편지는 큰 충격이였다.

내 죄책감 때문에 동생에게 더 큰 죄책감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뒷통수를 얻어 맞은듯한 

충격이였다 그날로 길게 길었던 머리를 자르고 술도 먹지 않고 

학교에 성실히 나갔다 

2년간의 방황이 끝나고 다시금 동생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우리집도 평화를 찾은 듯 했다.

그사이 우리집엔 큰 변화가 두가지 있었는데 

젖살로 통통한 몸매를 유지하던 동생이 젓살이 빠져서 인지 마음고생을 해서 인지 

홀쭉해졌고 항상 최상위권은 아니어도 상위권을 유지하던 내성적이 

개막장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

지금 생각 해보면 동생도 많은 고민끝에 편지를 쓴 것이겠지만 너무 늦었다 

이미 내 성적과 내신은 바닥을 치고 있었고 고3 여름 방학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나는 결국 수험을 포기하고 어차피 제수할꺼 군대문제부터 빨리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해병대를 골라 자원입대 하게되었다 

이 선택은 내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이며 해병대에 가고자 하는 미필 친구들이 있다면 

가지말라고 단호하게 말하겠다 해병대에서 남는건 맞은 기억과 때린 기억 예비군 갈때 창피한 

예비군복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우회 가입하라는 아저씨들의 전화 뿐이다 

내인생에 가장큰 실수 라고 말했다 이말을 명심해야 하는게 난 여동생과 잔놈이다! 

각설 하고 그렇게 난 남들보다 조금 빨리 군대에 갔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워 했고 새어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으며 

동생과 철없는 막내는 대성통곡을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던 놈이 갑자기 군인으로 전직해서 잘 할리가 있나 

내 군생활은 처음부터 고난의 연속이였다 

그 힘든 군생활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주마다 한통씩 오는 동생의 편지였다 

그렇게 지옥같은 3개월여가 흐르고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첫휴가를 나온날 

지독히 추운 겨울날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지만 

겨우겨우 참았냈다 동생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내게 안겼고 나도 동생을 꼭안아 주었다 

새어머니가 한껏 신경쓴 밥을 잔뜩 먹고 쉬고 있는데 아버지가 나를 부르셧다 

대뜸 배란다에서 담배를 한까치 건내주시는데 몇번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 불을 부쳤다 

아버지는 꾀 심란한 얼굴로 나에게 조심 스럽게 말했다 

친어머니가 많이 아픈거 같다고 얼마 못살꺼 같다고 

다음날 아침 짐을챙기고 친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동생의 사건이후 평생을 증오라는 감정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군대에 가서 개고생을 해서 일까 친어머니가 아프다는 이야길 들어서 일까 

그런 내손을 잡고 동생이 따라 나섰다 

내 만류에도 불구 하고 동생은 이미 친어머니를 용서했고 만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않았다고 하며 나와 함께라면 만날 수 있을꺼라고 했다 

친어머니가 있다는 지방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동생은 연신 

장난을 치고 까맣게 그을린 내 피부를 놀리며 애써 밝은책 했지만 

난 동생이 걱정되었다 

지방의 한 요양병원 친어머니가 있다는 병실에 도착하자 내손을 꽉쥐는 손에서 

동생의 긴장감이 전해졌다 난 동생을 진정시키고 어머니가 있다는 병실의 문을 열었다 

병실에 홀로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였다 

내기억의 어머니는 항상 아름답고 자신감 넘치며 기품있는 모습이였는데 

병실의 어머니는 병때문인지 초라하고 앙상하게 말라있었고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였다 

동생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눈물을 흘렸고 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고 망설이고 있었다 

친어머니도 한눈에 우리를 알아본듯 했다 

그러곤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을 우리에게 던지며 악을써댔다 

여긴 왜 왔냐고 비웃으러 왔냐고 그냥 병원비나 부치지 무슨 구경을 하러 여기 왔냐고 

눈물을 흘리며 아니라며 변명을 하는 동생의 팔을 잡아 끌고 병실을 뛰쳐 나왔다 

그 길로 가장 가까운 술집에 들어가 입대전날에도 마시지 않았던 술을 마셨다 

친어머니의 그 태도 보다 더욱 용서가 안되는건 그런 태도 를 보인 어머니의 모습의

화가 나기 보다 초라하게 늙은 어머니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나 자신이였다 

동생 또한 내앞에 버티고 앉아 잘먹지도 못하는 술을 연신 먹어댔다 

우리는 울고 웃으며 친어머니를 저주했다가 용서했다가 동정했다가 다시 저주하며 술을 먹어댔다 

전봇대를 부여잡고 토를 하는 동생의 머리를 잡아주며 등을 토닥여주던 기억을 마지막으로 필름이 끊겼다 

아찔하게 머리가 아파왔고 눈을 떠보니 딱봐도 싸구려로 보이는 모텔 방이였고 

내 곁엔 동생이 누워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와 동생 아래로 깔려 있는 이불위엔 동생의 것이 분명한 혈흔이 

선명히 남아있었고 깨질꺼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머리를 굴리자 어제의 단편적인 기억이 

조금 씩 떠오른다 두사람이 휘청이며 모텔에 들어선것 엉엉우는 동생을 달래며 꼭끼앉았던것 

동생의 키스에 동조해 몸을 맡겼던 것 

모든일이 기억나자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동생이 이 일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우리남매의 가장큰 키워드는 죄책감일것이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모든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며 죄책감을 강요 받았고 

나는 그런 동생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 했던 동생이 이일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덜컥 겁부터 났다 

주섬주섬 속옷을 주서입고 불편한 화장용 의자에 앉아 줄담배를 태우다보니 

어느샌가 동생이 깨어났다 동생은 급히 이불을 감아 자신의 몸을 가리며 아무말도 없이 

나를 쳐다 보았다 지금에서도 내가 그때 어떤 표정으로 동생을 바라보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은 멍한 눈으로 나를 뻔히 바라보다가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반 나체 상태인 것도 신경쓰지 않고 우린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끓어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연신 서로 에게 미안 하다고 말하며 

그렇게 한참을 눈물을 쏟아낸 후 우린 다시 한참을 혀를 섞고 또 다시 하나가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안타깝께도 설명할 수 없다 

우리 남매는 서로에게 너무나도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고 서로를 너무 사랑했기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리라 나또한 짐작 할 뿐이다 

우린 그렇게 죄책감에 의해 천륜을 어긴 괴물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난 내내 동생의 책임이 아니며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우리의 운명 같은 거라고 설득했다 

부대에 복귀 하면서도 새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동생을 잘 부탁한다며 신신당부 했다 

다행히도 내가 걱정하던 일은 벌어 지지 않았고 

한번 그런일을 겪고 나자 동생과 나의 관계는 그것이 자연스런운 일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인과 남매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전역 후 기적의 재수에 성공한 나는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으며 이제 졸업을 앞 두고 있다 

동생 또한 나보다 한발 먼저 사회에나가 나름대로 자기가 원하던 분야에서 자신의 꿈을 키워 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눈물을 흘리며 몸을섞는다 

우리는 괴물이다 우리는 우리가 괴물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린 누구보다 서로 사랑하고 있는 괴물이다.

변명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였습니다 

다시는 우리 같은 괴물이 태어나지 않길 빌며 이글을 마칩니다